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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7 죄많은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하다 by 망고 (8)

죄많은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하다

지난 추석 연휴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보게 되었습니다.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고 계시는 아버지께서 사놓으셨더군요.
부위는 꽃살, 가격은 돼지고기 수준이더군요.

저 역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절차적 문제가 마음에 걸릴 뿐이죠.
합리적인 수준에서 협상이 되었더라면
기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을지도 몰랐을 고기인데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 때문에
상당히 찜찜한 기분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제 귀에 대고
'닥치고 먹으라고 했지? 니들이 뭘 알아'
라고 먹는내내 약을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소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죽어서도 여러 소리를 듣고 있으니 성불이라도 시켜줘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판입니다.

때문에 배불리 먹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자칭 쇠고기 매니아라고 자부하는 판에
맛은 제대로 봐주어야겠죠.
제 입맛이 까다롭게 굴자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어서
아무거나 먹을때는 아무거나 잘 먹지만
맛을 보면서 먹을때는 여간해선 만족이 잘 안되거든요.

처음 맛본 미국산 쇠고기는 육질은 좋지만 맛은 그럭저럭 이었습니다.
좀 싱겁달까요. 그리고 부위 탓인지 기름이 좀 많았습니다.
굳이 평하자면 "싼 맛에 먹는다" 정도가 되겠네요.
맛으로만 따지자면 비싼 한우고기가 더 맛있었습니다.
돼지고기 가격으로 쇠고기를 먹는다는 것 정도랄까요.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수입업자들은 왜 쇠고기를 돼지고기 가격에 파는 걸까요?

여기에 아버지께선 "원가가 싸기 때문이다"고 하셨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화폐가치가 실물경제를 떠난 이후로
가격결정 요인은 원가가 아닌, "소비자들이 얼마를 낼 수 있는가" 이니까요.
미국산 쇠고기가 그만한 가격으로 팔리는데에는
소비자들이 그만한 가격이 아니면 사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만일, 소비자 심리가 미국산 쇠고기의 효용을 더 높게 판단하게 된다면
가격은 반드시 올라갑니다.

이렇게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께서는 수입업자들의 경쟁을 통해 낮은 가격이 유지될꺼라도 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불경스런 아들은 동의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쇠고기 수입업의 진입장벽을 생각해봅시다.
공급할 회사랑 계약도 터야하고
국내 유통망도 갖추어야하고
물류창고도 갖추어야합니다.
석유같은 굴뚝 산업에 비할만큼은 아니지만
보따리상처럼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님에는 분명합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언제든 카르텔이 일어납니다.
명시적인게 아니라면 암묵적인 것이라도 있게 마련이죠.
업자들은 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추는 노력보다는 담합을 통해
이익을 보전하는 선택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 쪽이 싸게 먹히니까요.
담합에 가담하지 않을 경우 담합한 업체들에 여러 마케팅 정책에 의해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죠.
바나나를 봅시다.
돌과 델몬트는 종종 헐값으로 바나나를 출시합니다.
그리고 소규모 경쟁업체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면
슬그머니 다시 가격을 올립니다.
지금 우리는 바나나를 헐값으로 사먹지만
예전만해도 바나나는 고급과일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꺼란 예측은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 죄많은 미국산 쇠고기마저 이렇게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을꺼란 생각입니다.
시장 진입을 위한 대박 할인판매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이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추가협상과 마찬가지로
이 할인판매 기간마저도 시민들의 촛불집회의 성과가 아닐까 생각하다가
좀 서글퍼졌습니다.

배를 채우려고 머리가 복잡해지는 악영향을 생각하니
그냥 안먹는게 낫겠습니다.

ps) 그나저나 아기 이야기를 제외하고 이 얼마만에 제 이야기 포스팅입니까?


Posted by 망고

2008/09/17 19:31 2008/09/17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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