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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는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을 발생시켰어요. '유통 독점'이란 파시즘이죠. 이 독점 형태는 미국과 프랑스같이 항상 독점을 비난해온 민주 국가에 뿌리를 내렸어요. 프랑스는 왕의 독재를 용납하지 못해 왕을 사형시킨 국가인데 까르푸나 오샹 같은 대형마트 왕들에게는 아무 상관을 안 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정부는 아무 제재도 하지 않아요. 유통 독점이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한 데도요. 그게 포도주 업계에도 영향을 주면 품질 좋은 포도주는 사라지고 똑같은 포도주가 1,2백만 병씩 생산되겠죠."

- 랑그독 아니안(Anianc, Languedoc) 지방의 도마스 가삭(Daumas Gassac)을 운영하는 에메 기베르(Aimé Guibert) 씨의 말 중


몬도비노(Mondovino).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인용되고, 지난 EIDF 2007에서 상영되었던 다큐멘터리다. 장장 2시간 10분여에 이르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흥미롭고 긴장됐다. 와인과 와인산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무엇, 토마스 L. 프리드먼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 비유하던 바로 세계화와 지역사회의 충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감독은 편집과 촬영기법을 통해 일단 지역사회의 손을 드는 듯 보인다. 와인 세계화의 주역 몬다비, 미셸 롤랑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현대적인 와인 생산자들은 자본지향적이고 거만하며 약삭빠른 사업가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지역 포도주 생산업자들은 나이 많고 마음씨 좋으며 자신들이 오랜 세월 지켜온 와인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할아버지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한쪽은 온전히 옳고 다른 쪽은 온전히 그른 편하고 쉬운 상황은 별로 없다는 것이 내 경험칙이다. 가장 큰 적은 조장된 갈등의 커튼 뒤에서 배를 불리는 자들이다. 감독의 혐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다큐멘터리는 마이클 무어의 그것처럼 한쪽으로 내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양쪽 세력의 인터뷰가 교차편집되면서 와인을 둘러싼 세계화의 문제는 단순한 선악의 문제가 아닌 경제, 정치, 문화가 복합된, 결론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난다.

세계화의 주역들인 다국적 자본은 대부분의 경우 공격하기 좋은 악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지역 경제의 혼돈과 몰락이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지리상 발견의 시대에 대포를 들이대며 개항을 강요하던 자들의 악덕과 맥을 같이한다. 어찌 됐거나 그들이 원하던 것은 자신들이 과도하게 생산해낸 상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들과의 무역은 원하든 원치않든 지역 상업구조의 전면적 개편을 가져오고야 만다. 문제는 이 전면적 구조개편을 통해 시장이 획일화되고 진짜배기 상품들과 그것들을 키워낸 문화 자체가 사라진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주역들은 잘나가는 중이다. 그들이 그저 악으로 똘똘 뭉쳐진 집단이라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소비자들은 그들의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암묵적으로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소비자들은 어렵고, 멀고, 비싼 구시대의 와인들보다 쉽고, 가깝고, 적당한 가격의 와인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알고 있는 세계화의 플레이어들은 프랑스 와인산업의 낙후된 관리체계를 공략했다. 거대자본, 대량생산, 품질관리 그리고 마케팅을 통해 포도밭을 사들이고 공정을 획일화 했으며 와인 스펙테이터지와 로버트 파커로 대표되는 와인 전문가들을 통해 생산된 와인에 가치를 부여했다. 결과는?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맛의 와인을 비슷한 가격에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세계화가 가지는 놀라운 승리다.

그렇다면, 반대편은 어떠한가? 자신들의 포도밭을 가지고 그 포도밭의 맛을 와인에 담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약한 자본력, 높은 비용, 약한 마케팅력을 가지고 세계화의 플레이어에 맞서야 한다. 그들은 천편일률적이 돼버린 와인맛과 퇴색해가고 있는 와인문화를 신랄하게 꼬집지만 미력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와인을 좋아한다기보다 와인잡지와 마케팅이 만들어낸 와인의 고급스런 이미지를 소비할 뿐이니까.

사람의 기호에 관한 한 절대적인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딸기가 맛있다고 사과를 안먹지 않는 것처럼 한 사람의 입맛이란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입맛이다. 로버트 파커의 입맛이 있다면 그와 다른 입맛은 다 어디 간 것일까? 그들의 입맛은 업계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묻혀있을 뿐인 것은 아닐까? 결국, 글로벌 자본은 그들의 시장을 넓히고자 미국인 로버트 파커라는 인물을 필요로 했을 뿐인 것은 아닐까? 많은 입맛이 충돌하며 작은 시장내에서 경쟁하는 모델보다는 하나의 입맛으로 등급화된 제품군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그들의 전략에 더 적합해보인다.

와인을 좋아하는 소비자로서 근래들은 와인의 대중성은 환영할만한 것이지만 왠지 마케팅 문구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00% 오렌지 쥬스를 생각해보자.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사 먹을 수 있는 100% 오렌지 쥬스가 대중화되었지만 진짜 100% 쥬스는 사라졌다. 대중화는 달콤하지만 그 함정은 깊고 치명적이다. 토착문화를 갈아엎은 곳에서 세계화는 그들의 소비문화를 이식한다. 가짜 문화는 트렌드에 의해 옷을 갈아입으며 소비자들로 하여금 내용은 같으나 라벨만 다른 상품에 열광하도록 한다. 오리지널이 사라진 곳에서 대중이 가짜와 다른 가짜를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와인은 더이상 이름만 와인일뿐 더이상 와인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와인은 죽었다고 몬도비노의 한 와인생산자는 말한다.

얼마전 수입와인에 발암물질이 다량 들어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또한 와인 대중화의 그늘이지 싶다. 문화가 짓밟힌 그늘에서 자라는 잡초에는 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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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커는 와인평론가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높은 점수를 매기면 단번에 와인 가격이 오른다. 그의 점수는 와인업계에서 거의 절대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한 로버트 파커는 겸손하고 자신의 일에 사명감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쌓아온 최고의 와인평론가의 입지는 자신의 절대적인 미각과 후각에 기반을 두어 공정한 평가를 내린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품질이 낮아지면 가차없이 비판을 가한다. 사람들은 그런 로버트 파커의 점수를 보고 와인을 구매한다. 현재 존재하는 많은 와인평론가들도 자신의 입맛이 로버트 파커와 비슷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로버트 파커 자신은 와인업계에 무척 도움이 되는 존재이다. 문제는 로버트 파커 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한 사람의 미각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와인업계 자체다.

Posted by 망고

10 15, 2007 22:45 10 15, 2007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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