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미스는 전설이다.
음울한 세계종말의 영화마저 미끈한 액숀 블록버스터로 만들어놓는 능력.
06 30, 2008 15:33 06 30, 2008 15:33
스토리, 인물, 영상... 모든 요소가 음악을 위해 봉사하는
한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

아래는 영화 중 주인공 에반이 기타를 처음 쳐(?)보는 장면. 감독님 왜이러세요.
빛나는 재능은 보통사람을 더욱 그늘지게 한다구요.

 
Kaki King의 Bari Improv라는 곡인데 YouTube에 가면 이 곡을 따라치는 전세계의 수많은 기타인을 볼 수 있다. 극중 주인공의 대사 말마따나 "음악은 어디에나 있는거죠" 그중 괜찮은것 하나. 음.. 저게 정말 쳐지는구나.

05 1, 2008 15:20 05 1, 2008 15:20
There will be blood poster


이 놀라운 영화는 평범한(?) 악덕 석유업자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예언자에 대한 이야기일까?

감상을 섣불리 요약할 수 없는 영화가 있다. 짧게라도 감상을 쓰려고 했다가는 도대체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종잡을 수가 없는 그런 영화. 하지만 계속해서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가 떠오른다. 그러니 잊어버리기 전에 조금씩이라도 적어두어야 한다.

낮은 음성으로 시골 사람들에게 빵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그가, 결국 석유를 캐내어 그 사람들에게 빵을 주었다. 물론 자신은 더한 부자가 되었지만 애초에 그는 마을사람들에게 부자가 되도록 해주겠다고는 약속하지 않았다. 그는 약속을 지킨 사람인건가?

탐욕스럽고 폭력적이며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가 애덤 스미스의 성인이고 자본주의의 새로운 예언자라면 앞으로도 계속 사람은 소모되고 버려질 것이다. 극중에서처럼...

영화의 마지막에 다니엘 플레인뷰가 역설한 밀크쉐이크론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짧게 요약하면 남의 땅 아래에 있는 석유를 그 옆에 있는 땅을 파서 쪽 뽑아냈다는건데, "재화에 임자가 어디있나 먼저 먹는게 임자지"라는 논리다. 그것을 주인공은 밀크쉐이크 비유를 통해 짧고 명쾌하고 충격적으로 묘사해낸다. 그러고보면 빨대를 꽂는다는게 기업의 속성 아닐까. 시장을 포지셔닝하고 타게팅해서 쪽 빨아먹는걸 전문용어로 마케팅이라고 하는건 아닐까. 갑자기 세상이 빨대로 가득차보였다. 목뒤에 서늘한 이 느낌은 혹시 또다른 빨대는 아닐런지.

상세정보
wikipedia "There will be blood" page
imdb "There will be blood" page

04 10, 2008 12:42 04 10, 2008 12:42

관타나모로 가는 길10점
- 그들은 나쁜 놈들이 아니었다.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

친구의 결혼을 위해 파키스탄에 갔다가 아프간 사태에 휘말려 알카에다로 몰리면서 수년간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수용소 생활을 해야했던 네 친구의 이야기.

그들이 무고했고, 무고한 그들을 가혹하게 대했다는 사실로 그들을 가두고 심문했던 아프간 북부동맹과 미군을 악의 축으로 삼는 흑백논리를 펴고 싶진 않다. 선과 악의 이분법만으로는 사태를 제대로 볼 수 없을테니.

당시 미국은 필사적이었다. 9.11사건으로 심각하게 위협을 받았는데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몰랐으니까. 그래서 눈에 보이는대로 잡아다가 두들겨패서라도 "내가 당신들을 위협하고 있는 적의 실체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겠지. 그래야 마음이 편해질테니...

부시 대통령은 말한다.
"그들은 나쁜 놈들이다. 나쁜 놈들은 착한 사람들과 같은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이 너무나 단순명료해서 도무지 잘못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언설에는 함정이 있다. 한번 나쁜 놈으로 찍히면 그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권리를 갖지 못한 채 바닥없는 나쁜 놈의 함정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 다큐의 주인공들처럼.

친구의 결혼을 위해 고국 파키스탄으로 따라나섰다가 아프간의 현실을 알고 싶어졌고, 가면 뭔가 도울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선의가 발동해서 아프간으로 가게된 이 젊은이들은 - 대체 당시 아프간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이런 이유로 그곳에 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생각해보면 - 진정 재수없는 친구들이다.

하지만, 재수가 없는 것이 죄는 아니다. 재수가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 구속하고 고문하는 것이 명백한 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를 정당한 자유수호 행위의 작은 부작용 정도로 여기며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부작용이 있는 자유수호 행위를 세계 곳곳에서 수행하고 있다.

결론은 미국에 찍히지 마라. 행여 미국에 찍힌 나라로 여행갈 생각도 하지 마라. 그 나라로 같이 여행가자는 친구랑 친구하지 마라. 착한 편에 있으려면 그런 자유와 권리를 자진 반납하라. 착하게 살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http://www.shimminkyu.com/tc2008-01-31T04:12:220.31010
01 31, 2008 13:12 01 31, 2008 13:12

오래되었지만...
작고, 느리고, 조용하고, 공들인 영화.
침묵을 들려줄 줄 아는 영화.
보는 내내,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영화들
러브레터와 4월이야기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들 초속5cm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별의 목소리 들이 생각났다.

01 16, 2008 13:17 01 16, 2008 13:17
모던 타임즈
- Buck up - Never say die

지인이 보라고 강요권유하던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이제야 보았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인용된 부분은 많이 보아왔지만 전편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만큼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아주 오래된 영화가 현재의 문제의식을 직격으로 파고드는 것은 아무래도 사람이 그다지 변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주인공과 자꾸만 공장의 속도를 올리라고 다그치던 세련된 모습의 사장의 모습은 오늘날의 스트레오타입이기도 하다.  

'노력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의문이 들 때마다
'노력 안하는 것의 의미는 또 무엇인가?'
라고 반문한다.
현재로선 그 방법밖에 없다.
살아가려면...
웃자. 웃어주자.
웃어주고 손을 내밀어주자. 타인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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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4, 2008 14:26 01 14, 2008 14:26

드디어 보았다.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다.
목이 터져라 노래를 하고 싶어졌다.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the choice
You've made it now

12 21, 2007 21:35 12 21, 200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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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orus(Les Choriste).
2004년 프랑스 작품.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적자생존과 자연도태와 같은 자연법칙을 체득하게 마련이다. 힘이 있는 자는 살아남고 힘이 없는 자는 도태된다. 짐승과 같은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선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영화는 문제아, 고아들을 모아놓은 기숙학교에 부임한 한 음악선생의 이야기로 인간의 선함이 발현되는 극히 기적적인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선함은 아이들을 교화시킬 뿐 아니라 주변의 어른들에게도 - 교사들뿐 아니라 교장까지도 -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사는 것은 만만찮다. C'est la vie. 희망은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이는 금세 잦아들고 만다.

우리가 희망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은 희망이란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시작되고 끝이 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져 다시 시작된다는 덕분일 것이다. 부디 야비해지지 말고, 희망을 키우고, 희망을 뿌리자.

11 14, 2007 12:32 11 14, 200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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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영화에서 만나는 정재영 씨는 장르에 관계없이 언제나 무식하게 우직스럽고 난데없이 해맑다. 약삭빠른 현실에서라면 반드시 소외되고야말 그의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는 늘 새로운 길을 열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장진 감독의 영화는 장르에 관계없이 판타지다. 현실에서 보고 싶은 판타지다.

10 25, 2007 12:43 10 25, 200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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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는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을 발생시켰어요. '유통 독점'이란 파시즘이죠. 이 독점 형태는 미국과 프랑스같이 항상 독점을 비난해온 민주 국가에 뿌리를 내렸어요. 프랑스는 왕의 독재를 용납하지 못해 왕을 사형시킨 국가인데 까르푸나 오샹 같은 대형마트 왕들에게는 아무 상관을 안 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정부는 아무 제재도 하지 않아요. 유통 독점이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한 데도요. 그게 포도주 업계에도 영향을 주면 품질 좋은 포도주는 사라지고 똑같은 포도주가 1,2백만 병씩 생산되겠죠."

- 랑그독 아니안(Anianc, Languedoc) 지방의 도마스 가삭(Daumas Gassac)을 운영하는 에메 기베르(Aimé Guibert) 씨의 말 중


몬도비노(Mondovino).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인용되고, 지난 EIDF 2007에서 상영되었던 다큐멘터리다. 장장 2시간 10분여에 이르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흥미롭고 긴장됐다. 와인과 와인산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무엇, 토마스 L. 프리드먼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 비유하던 바로 세계화와 지역사회의 충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감독은 편집과 촬영기법을 통해 일단 지역사회의 손을 드는 듯 보인다. 와인 세계화의 주역 몬다비, 미셸 롤랑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현대적인 와인 생산자들은 자본지향적이고 거만하며 약삭빠른 사업가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지역 포도주 생산업자들은 나이 많고 마음씨 좋으며 자신들이 오랜 세월 지켜온 와인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할아버지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한쪽은 온전히 옳고 다른 쪽은 온전히 그른 편하고 쉬운 상황은 별로 없다는 것이 내 경험칙이다. 가장 큰 적은 조장된 갈등의 커튼 뒤에서 배를 불리는 자들이다. 감독의 혐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다큐멘터리는 마이클 무어의 그것처럼 한쪽으로 내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양쪽 세력의 인터뷰가 교차편집되면서 와인을 둘러싼 세계화의 문제는 단순한 선악의 문제가 아닌 경제, 정치, 문화가 복합된, 결론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 서서히 드러난다.

세계화의 주역들인 다국적 자본은 대부분의 경우 공격하기 좋은 악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지역 경제의 혼돈과 몰락이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지리상 발견의 시대에 대포를 들이대며 개항을 강요하던 자들의 악덕과 맥을 같이한다. 어찌 됐거나 그들이 원하던 것은 자신들이 과도하게 생산해낸 상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들과의 무역은 원하든 원치않든 지역 상업구조의 전면적 개편을 가져오고야 만다. 문제는 이 전면적 구조개편을 통해 시장이 획일화되고 진짜배기 상품들과 그것들을 키워낸 문화 자체가 사라진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주역들은 잘나가는 중이다. 그들이 그저 악으로 똘똘 뭉쳐진 집단이라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소비자들은 그들의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암묵적으로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소비자들은 어렵고, 멀고, 비싼 구시대의 와인들보다 쉽고, 가깝고, 적당한 가격의 와인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알고 있는 세계화의 플레이어들은 프랑스 와인산업의 낙후된 관리체계를 공략했다. 거대자본, 대량생산, 품질관리 그리고 마케팅을 통해 포도밭을 사들이고 공정을 획일화 했으며 와인 스펙테이터지와 로버트 파커로 대표되는 와인 전문가들을 통해 생산된 와인에 가치를 부여했다. 결과는?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맛의 와인을 비슷한 가격에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세계화가 가지는 놀라운 승리다.

그렇다면, 반대편은 어떠한가? 자신들의 포도밭을 가지고 그 포도밭의 맛을 와인에 담으려고 했던 사람들은 약한 자본력, 높은 비용, 약한 마케팅력을 가지고 세계화의 플레이어에 맞서야 한다. 그들은 천편일률적이 돼버린 와인맛과 퇴색해가고 있는 와인문화를 신랄하게 꼬집지만 미력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와인을 좋아한다기보다 와인잡지와 마케팅이 만들어낸 와인의 고급스런 이미지를 소비할 뿐이니까.

사람의 기호에 관한 한 절대적인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딸기가 맛있다고 사과를 안먹지 않는 것처럼 한 사람의 입맛이란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입맛이다. 로버트 파커의 입맛이 있다면 그와 다른 입맛은 다 어디 간 것일까? 그들의 입맛은 업계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묻혀있을 뿐인 것은 아닐까? 결국, 글로벌 자본은 그들의 시장을 넓히고자 미국인 로버트 파커라는 인물을 필요로 했을 뿐인 것은 아닐까? 많은 입맛이 충돌하며 작은 시장내에서 경쟁하는 모델보다는 하나의 입맛으로 등급화된 제품군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그들의 전략에 더 적합해보인다.

와인을 좋아하는 소비자로서 근래들은 와인의 대중성은 환영할만한 것이지만 왠지 마케팅 문구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00% 오렌지 쥬스를 생각해보자.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사 먹을 수 있는 100% 오렌지 쥬스가 대중화되었지만 진짜 100% 쥬스는 사라졌다. 대중화는 달콤하지만 그 함정은 깊고 치명적이다. 토착문화를 갈아엎은 곳에서 세계화는 그들의 소비문화를 이식한다. 가짜 문화는 트렌드에 의해 옷을 갈아입으며 소비자들로 하여금 내용은 같으나 라벨만 다른 상품에 열광하도록 한다. 오리지널이 사라진 곳에서 대중이 가짜와 다른 가짜를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와인은 더이상 이름만 와인일뿐 더이상 와인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를 두고 와인은 죽었다고 몬도비노의 한 와인생산자는 말한다.

얼마전 수입와인에 발암물질이 다량 들어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또한 와인 대중화의 그늘이지 싶다. 문화가 짓밟힌 그늘에서 자라는 잡초에는 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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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커는 와인평론가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높은 점수를 매기면 단번에 와인 가격이 오른다. 그의 점수는 와인업계에서 거의 절대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한 로버트 파커는 겸손하고 자신의 일에 사명감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쌓아온 최고의 와인평론가의 입지는 자신의 절대적인 미각과 후각에 기반을 두어 공정한 평가를 내린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품질이 낮아지면 가차없이 비판을 가한다. 사람들은 그런 로버트 파커의 점수를 보고 와인을 구매한다. 현재 존재하는 많은 와인평론가들도 자신의 입맛이 로버트 파커와 비슷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했다. 로버트 파커 자신은 와인업계에 무척 도움이 되는 존재이다. 문제는 로버트 파커 한 사람이 아니라 그런 한 사람의 미각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와인업계 자체다.

10 15, 2007 22:45 10 15, 2007 2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