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다

아기엄마가 회식에 참석하는 동안 아기는 잠들었다. 아빠는 재빨리 라면을 끓인다. 라면을 몇 젓가락인가 건져먹는 동안 아기가 낑낑거린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가본다. 아기는 베개를 엄마인양 안고 베갯닛을 빨려고 애쓰고 있다. 9시에 돌아온다던 엄마는 10시가 다 되어서도 감감 무소식이다.

회식이라 늦는거 이해한다. 사회생활이란거 조직생활이란거. 하기싫어도 해야하는 일 투성이란거. 이해한다. 아기와 아기를 돌보느라 엉망진창인 남편은 안중에 없이 흥청망청 놀고 있을 아내가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화가 난다. 아기가 엄마를 찾아서 낑낑거리는동안 나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이 화가 아기를 대신한 것인지 아니면 불어터진 라면을 먹어야하는 내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빠가 대신할 수 없는 엄마의 역할이 있다. 엄마가 대신할 수 없는 아빠의 역할이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지만 글쎄... 없는 것 같다. 눈치보느라 술자리에 끼어있을 아기 엄마야. 눈썹을 휘날리며 돌아오라.

Posted by 망고

2008/12/23 21:56 2008/12/2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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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시절 친구 이야기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난 당시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몸도 마음도 약하고 많이 흔들리는 사람이다.
함께 재수를 하던 학원의 반친구들은 모두 비장한 각오가 얼굴에 드러났었고
그런 비장한 각오는 재수학원 전체의 공기이기도 했다.
그 공기 속에서 나는 이리저리 흔들렸다.

자신을 납득시키는 일은 어려웠다.
이해는 시킬 수 있지만 설득은 할 수 없는 고집불통.
재수를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는데
1년간의 재수생활을 지탱할 수 있는 지구력이 내게는 결여되어 있었다.

때문에 재수 초반, 나는 많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날은 학원에 갔다가 담임선생님께(학원이지만 담임 선생님이 계셨다.) 조퇴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일찍 나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만화방에 쳐박혀 만화를 봤다. (그때고 지금이고 나는 대책없는 도망에는 일가견이 있다.) 담임 선생님은 매우 인자하신 분이셨는데 나를 믿어주었던 것인지 솔직히 "오늘은 공부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맹랑한 재수생 제자를 그런 마음이 들때마다 조퇴시켜주셨다. 물론 그 눈빛은 '얼른 중심을 잡아라'고 말씀하고 계셨지만...

그렇게 대책없이 흔들리다가 당시 친하던 옆자리 동료(친구보다 이 편이 더 뉘앙스가 낫다고 생각된다)의 편지를 한 장 받았다. 테이프 한 개과 함께...

테이프는 당시 좋아하는 이성친구에서 선물하는 유행이 있었던 ''핸드메이드 컴필레이션 테이프'였고 그 친구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들은 거기 다 담겨있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샤방샤방한 사랑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그 친구는 남자였고, 편지는 "니가 흔들리면 나도 흔들린다. 나는 나를 믿어주시는 부모님들을 더이상 실망시켜드릴 수 없다. 테이프는 여자친구 생기면 주려고 만든 거지만 너에게 주겠다. 정신차려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당시 편지는 남아있지 않으니 내 기억에 의지해 재구성한 것이지만.

편지는 충격이었다.
나를 제외한 반친구들은 모두 비장함으로 똘똘 뭉쳐있었고, 전우의 시체쯤은 얼마든지 즈려밟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어 보였는데, 실은 나로 인해 그 비장한 전사들도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참 미안했다. 다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고, 좋은 시절을 창살 속에서 (정말 등교시간이 지나면 학원 정문을 창살문으로 잠궜다) 보내고 있는 동료들에게 내 약한 모습은 불안감을 전염시킬 수 있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 편지를 받고나서 답장을 썼다.
"고맙다. 친구. 너의 일격이 내 정신을 차리게 했다. 우리 서로 칼을 겨누고 이 재수기간을 건너가보자. 내가 흔들릴 때 네 칼이 나를 노렸듯이 네가 흔들리면 내 칼도 너를 겨눌테다."
그렇게 우리는 극한의 추위에서 서로 뺨을 때려가며 생존을 기약했다. 물론 그 반듯한 친구를 공격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던 것 같으니 나는 주로 맞고 정신을 차리는 쪽이었던 것 같다. 나는 한단계 성장했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모두 내 적인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내 평생 친구로 삼아야할 사람들도 있다.

대학에 진학한 후 그 친구와 연락은 끊겼다. 나중에 혹시 만나게 되면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어서 기억났을 때 적어둔다.

Posted by 망고

2008/11/29 23:31 2008/11/2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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