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 얘깁니다.
정체(Identity)란거 살아가는데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대충 때우고 살려면 모르겠지만
목적을 가지고 사회에 기여하려면
저 정체란 녀석이 꼭 필요합니다.
얼마전 친한 선배로부터 '엔지니어스럽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엔지니어스럽다.'라... 무슨 말일까요?
전 엔지니어 출신은 아닙니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IT 그것도 SI업체에서 3년간 굴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지니어스럽다'면 분명 출신의 얘기는 아닐 겁니다.
저는 지금 방송통신대에서 컴퓨터과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밑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붓기보다
일단 독부터 고치자는 생각에서 하고 있는 공부입니다.
덕분에 BNF니 ADT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엔지니어스럽다'는건 어찌보면 '일반유저의 관점을 잃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일반유저에서 개발자가 된 케이스랄까요.
흥미가 땡기는 기술들을 하나하나 살펴가다보니 일반유저의 관점과 괴리되버린 셈이죠.
이 쯤에서 전 조금 절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업계에서 3년간 구르면서 보아온 많은 개발자들이 가지고 있던 문제였거든요.
그건 소통의 문제였죠.
현업 입장에서는 감내놔라하면 배내놓는 식이라 황당했을 법도 하고
개발자 입장에서는 감이 나지도 않는 철에 감을 내놓으라하니 또 나름대로 황당할 수도 있었겠죠.
막상 회의는 이런식으로 화기애애하게 돌아갔습니다.
현업 : 뭐 다 좋겠지만 기왕이면 빨갛고 달고 맛있는 과일이 좋지 않을까요? 제가 과일쪽으론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네요. 알아서 잘 해주세요.
개발자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떫은 건 사용자들이 싫어하죠. 기왕 상에 올리려면 껍질을 깎고 먹기좋게 썰어서 올리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의 쪽에 과일을 토끼모양으로 잘 깎는 친구가 있는데 마침 잘 됐네요.
막상 프로젝트가 중후반에 이르면 현업은 프로젝트룸에서 배를 토끼모양으로 정성스레 깎고 있는 개발자 무리를 발견하게됩니다. 그리고 회의록을 뒤지고 '니가 그랬다', '내가 언제 그랬냐' 그러다가 밤을 새던 개발자들은 급기야 배에다가 빨간 물감을 칠하게 되지요.
여러가지 문제가 복합되어있지만, 관점의 괴리라는 문제가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쉽네요.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면 되겠군요. 하지만 그게 쉬운일은 아닙니다. 전문분야가 있는 사람들이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이건 비단 개발자의 문제만은 아니죠. 의사, 변호사, 애널리스트, 회계사. 서로 대화하기 힘들긴 이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게 보면, 일반유저로서의 관점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제 분야로 잘 파고들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니까요. 저에게 일반유저로서의 관점과 전문지식 둘 사이에서 하나를 고르라하면 전 당연히 전문지식 쪽을 택하겠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순 없으니 협업해야지요. 미소를 띄우고 귀를 열어두는 편이 모든걸 혼자 다 하겠다고 움켜쥐고 있는 것보다 현명한 생각일 것 같습니다.
아 그래서 처음의 질문 말인데요.
제 정체는 뭘까요?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소셜한 관점을 가진 엔지니어 거나
혹은 기술적 관점을 가진 소셜리스트 겠지만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Posted by 망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