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한달이 더 지난 얘기지만 한번은 정리해야할 것 같아 글을 시작합니다.
아이를 낳는다는게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결혼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도 이것보다는 덜 한 것 같습니다.
내 아이가 세상에 있다.
참 묘한 기분입니다.
출산의 시기로 기억을 되돌려가보면 참 재미있었습니다.
아내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아이는 안에서 태동을 하고
동화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혹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넘어질까 마지막 한달은 차로 출퇴근을 해주었죠.
(임신 초반에 실제로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ㅡㅡ; )
예정일이 다되어 부산에 있는 부모님집에 가서는 참 운동을 많이 다녔습니다.
광안리 일대를 휘젖고 다녔죠.
부모님께서 너무 운동 많이 하는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말이죠.
그래도 제가 힘들면 힘들었지 만삭의 아내는 멀쩡하더군요. ㅡㅡ;;
가끔 가진통이 왔습니다.
가진통이라고 해도 지난 지금에서야 가진통이지
당시에는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가진통인지 진통인지 알 수가 없었죠.
아내는 아예 스톱워치를 들고다니며 진통 간격을 쟀습니다.
우리 아기는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 되려나봅니다.
예정일이 되자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진통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진통이 오면
'아 이게 진통이구나' 한다구요.
아내도 그랬답니다.
5.18일 새벽5시경에 진통을 시작하고
간격을 재면서 아침을 먹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차안에서 양수가 터진다든가 하는 드라마틱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아이는 대개 첫진통이 오고 10시간이 지나서야 나온다니까
어지간히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위와 같은 상황은 오지 않습니다.
뭐 어떤 사람은 병원에 들어가서 30분만에 아이를 낳았다고 하기도 하니
이건 경우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남편분들은 너무 긴장을 푸시는 것도 좋지 않을듯 하네요.
출산시 함께 있기 위해서 가족분만실에서 아이를 낳기로 했습니다.
일반 분만실은 진통 중인 산모들이 여러분 계시기 때문에
남편이나 다른 가족들의 출입을 통제하더군요.
뭐 가끔 일반 분만실에서도 남편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기도 하나봅니다.

분만실에 들어가서 링거주사와 진통제주사를 꽂고
아기 심장박동과 자궁수축 정도를 측정하는 계기를 달았습니다.
환자복 입고 링거를 꽂으니 이제 실감이 좀 납니다.
정말 우리 아기가 나오는거야? 그런거야?



이 때가 오전 10경쯤 되었을까요.
아기 심장박동과 자궁수축 정도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일 없더군요.

자궁수축 정도를 재는 기기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위의 숫자는 아기의 심장박동이고 아래 숫자는 자궁수축 정도 입니다.

이렇게 100이 되면 무척 아파합니다.
간혹 진통이 올 때 빼고는 심심해진 저와 아내는 TV도 보고 음악도 들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남편은 근처 빵집에서 샌드위치도 사와서 먹었습니다.
간호사선생님에게 남편 혼자 먹는다고 혼났습니다 ㅡㅡ;;
네.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부터 임산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합니다.
물도 될 수 있으면 먹지 말라더군요.
아. 이래서 병원가기전에 등심을 구워먹는다고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배가 고픈 남편은 샌드위치랑 커피를 슥삭 해치웠습니다.
그리고나서 TV를 보니 무한도전을 하더군요.
평소에 안보는 TV라서인지 그날 따라 재밌더군요.
옆에서 히히덕 거리다가 아내에게 혼났습니다.
아내의 고통에 함께 해달라구요.
그 때부터 웃을 때 진통수치를 봐가며 웃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진통간격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점점 더 고통스러워하더군요.
가끔 간호사나 의사샘이 와서 자궁입구의 열린 정도를 보시고 가셨습니다.
아이가 나오려면 10cm가 열려야한답니다.
아내가 너무나 아파해서 남편은 뭔 일이 나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럴때마다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표정변화를 주시했죠.
너무도 담담하게 "좀 더 아파야 됩니다." 하시더군요. ㅡㅡ;
저녁시간이 되어 저는 재빨리 병원 근처 분식집에서
떡뽂이로 요기를 하고 분만실로 돌아왔습니다.
아기가 아빠가 자리를 비운사이 나온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참으로 참을성 많은 아기입니다.
심지어 아기는 당일 서울로 세미나를 가신 담당 의사선생님이 저녁 8시경에
돌아오실 때까지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출산예정일 저녁 8시 50분경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다 기다린 끝에
아기는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기가 나올때 아내는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남편은 옆에서 거의 지켜봐 줄 수 있을 뿐입니다.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대목에서 뛰쳐나가시는 분들도 있다더군요.
그럴만하다 싶습니다.
뭔가 하기는 해야겠는데 할 수 있는게 없는 상황.
대부분의 남자분들은 무력감을 느낄만 합니다.
하지만 저는 곁에 있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렇게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제 눈 속에 담아둠으로써
두고두고 아내에게 잘해주는데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참 간사합니다.
자기 자신과도 협상을 하니까요.
'뭐 이런 것까지 해줘야할까?'라는 질문이 떠오르면
전 이 기억을 꺼내보렵니다.
총진통시간 약 15시간
아기는 3.29kg의 몸으로 무척이나 크게 울었습니다.
좁지않은 분만실이 울릴 정도로.
조그만 아기의 소리라고 하기엔 정말 우렁찼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의 얼굴을 보자
저도 몰래 눈 앞이 흐려졌습니다.
'아...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
첫눈에 왠지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반갑다 아가야. 내가 니 아빠야 :)'
본래 아기는 태어난 다음 엉덩이를 두들기면 폐호흡을 시작하면서 운다고 합니다.
우리 아기의 경우 태어날때 조금 일찍 숨을 쉬기 시작해서 양수와 피를 마시게 되었고 때문에 처음 며칠간 금식을 하고 위에 들어있는 양수와 피를 토해낼 때까지 링거를 맞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 다음엔 미리 일러준대로 탯줄을 자르고 (꽤 질기더군요. 잘 안잘려서 두번에 잘랐습니다.)
준비해놓은 물에 씻기면서 손가락, 발가락을 확인해주더군요.
아빠는 손가락, 발가락 수보다 아기 얼굴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아빠가 아가를 안아보게 해주더군요. :)
해서 아빠가 엄마보다 먼저 아가를 잠시 안아볼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가를 낳고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 모르고 있었을겁니다 ㅋㅋ)
아기는 정말 가볍고 작고 이쁩니다.
태어날때 크게 울었던 아기는 금새 눈을 감고 잠들어있었습니다.
이렇게 아기와 함께하는 삶의 1막이 끝났습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아내의 배가 불러오는걸 보고 (배가 트는 것도 보고 ㅡㅡ;)
임신,육아책을 보면서 주차별로 특이사항을 확인하고
먹고싶다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과 뚜레주르 버터크림빵을 사러다니고
막달이 다되어서는 초보운전 주제에 차 태워서 출퇴근을 시키고
태교여행을 가고싶다고 해서 광릉수목원에도 한번 다녀오고
그러면서 10개월이 휙 지나가버렸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재미있었던 경험들은 모두 아기가 엄마,아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렵니다.
출산기라고 쓰긴했는데 써놓고보니 별로 한게 없네요.
아기는 너무 예쁩니다.
너무 예뻐서 거의 공짜로 이런 예쁜 아기를 받아도 되는건가 싶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기와 함께하는 삶 2막이 한창입니다.
여보 수고했어요~ 그리고 사랑해요.
그리고 아가야 다시한번 엄마,아빠 곁으로 온 것을 환영한다~

ps) 아내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할 때, 남편도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출산관련 책자에는 "아내를 잘 배려하고 도와준다" 정도로만 나와있더군요.
'귀찮게만 안해도 크게 도와주는거다.'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부분은 좀 다시 고쳐썼으면 좋겠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부부가 함께 겪는 행사여야 하지 않을까요?
Posted by 망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