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 ![]() 김훈 지음/생각의나무 |
"칼의 노래"의 소설가이자 스스로를 자전거레이서라 칭하는 김훈의 다른 책에 수록되지 않았던 에세이 13편과 기존의 소설, 에세이집에 수록되었던 서문 그리고 그간 받았던 문학상에 대한 수상소감이 실려있는 책. 그의 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의 새로운 13편의 에세이와 읽지 못했던 서문이 반가웠지만, 책의 얇기는 조금 의아한 부분. 알라딘 예약주문을 통해 구입했더니 싸인본이 왔는데, 싸인펜으로 꾹꾹 눌러쓴 그의 싸인을 보고 있으면 모든 글들은 비롯된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통해 말을 건달까. 사람이 글을 통해 사람에게 말을 거는건지, 글이 사람을 통해 다시 글에게 말을 거는건지. 암튼 복잡미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인상적인 대목75 page어느 날 술 마시는 자리에서 내 친구들에게 여러 소방장비들의 기능과 작동방식을 열거하면서, 그 기능 하나하나가 어떻게 인간의 생명과 연결되는 것인지르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도심을 질주하는 소방차가 어째서 아름다운 것인지를 설명해 주었다. 내 친구들은 별 감동이 없었다. 술 마시는 자리에서 왜 불 끄는 얘기를 하느냐고 나를 나무라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실망했고, 친구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답답했다. >> 우리집에서는 신촌로터리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근처에 큰 정형외과가 있고, 또 조금만 가면 마포 소방서가 있는 까닭에 꽤나 자주 싸이렌 소리를 듣는다. 싸이렌 소리를 울리며 달려가거나 달려오는 앰블런스나 소방차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가슴벅참을 느꼈다. 이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해줄까말까 하다가 하지 않았다. 왠 소방차 얘기냐고 타박을 들을 것 같아서였다. 그것을 김훈씨는 인간이 위기에 처한 인간을 향해 가고 있다고, 그 행렬을 향해 소방차 만세, 인간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고 쓰고 있다. 나도 그와 함께 외치고 싶다. 81 page 숨진 대원이 암흑 속에서 고립되어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전짓불 빛을 기다리고 있었을 순간을 생각하면서 나는 울음을 참았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는 결국 고립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 이 책에서 저자는 계속해서 고립과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재난의 현장에서만 고립되는 것이 아니다. 더 무서운 것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에 둘러싸인채 고립되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버스를 타고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과 무엇을 공유하고 있나. 소통의 단절은 곧 죽음이다. 134 page 나는 요즘 신문이나 저널을 읽기가 너무 어려워요. 왜냐하면 그 언어가,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이 사회의 지배적 언론과 담론들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거예요. 그걸 뒤죽박죽으로 말을 하니까 이런 언어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할 수가 없는 것이고 이런 언어가 횡행할수록 인간 사이에는 소통이 아니라 단절이 심화되는 것이고 이 단절이 지금 거의 다 완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이 우리 언어의 현실에 대한 나의 인식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해버리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가. 왜 그런가. 아마도 그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고, 신념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의견과 사실은 뒤죽박죽이 됩니다. 나는 신념에 가득 찾 자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의심에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합니다. >> 문득 섬뜩해진 한 문장. 아마도 그들이 당파성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장에서 '그들'의 자리에 '나'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지금 우리나라에선 당파성에 매몰된 사람들을 비난하는 자들도 당파성에 매몰되어있긴 매한가지다. 의심이 가득찬 사람들은 어딜가도 환영받지 못한다. 이를 두고 언어지옥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무슨 말을 해도 악플이 달린다. 171 page 2000년 가을에 나는 다시 초야로 돌아왔다. 나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나는 내 당대의 어떠한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 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칼의 노래 서문이다. 그 힘에 언제나 놀라게 된다. 저자는 시를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문장은 한편의 시다. 205 page 생사의 급박함을 스스로 알아서 사람 모이는 대처에 나다니지 않고 혼자 처박혀서 한 줄 한 줄 쓰도록 하겠습니다.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의 문제는 무리를 지나치게 아늑해하고, 고립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고립되면 죽는다고 쓴 것이 저자가 아니었던가. 이 문장의 무게는 남다르다. 하지만 공약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 무게를 감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또한 언어의 지옥이다. |
Posted by 망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