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많은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하다

지난 추석 연휴에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보게 되었습니다.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고 계시는 아버지께서 사놓으셨더군요.
부위는 꽃살, 가격은 돼지고기 수준이더군요.

저 역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절차적 문제가 마음에 걸릴 뿐이죠.
합리적인 수준에서 협상이 되었더라면
기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을지도 몰랐을 고기인데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 때문에
상당히 찜찜한 기분으로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제 귀에 대고
'닥치고 먹으라고 했지? 니들이 뭘 알아'
라고 먹는내내 약을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소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죽어서도 여러 소리를 듣고 있으니 성불이라도 시켜줘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판입니다.

때문에 배불리 먹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자칭 쇠고기 매니아라고 자부하는 판에
맛은 제대로 봐주어야겠죠.
제 입맛이 까다롭게 굴자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어서
아무거나 먹을때는 아무거나 잘 먹지만
맛을 보면서 먹을때는 여간해선 만족이 잘 안되거든요.

처음 맛본 미국산 쇠고기는 육질은 좋지만 맛은 그럭저럭 이었습니다.
좀 싱겁달까요. 그리고 부위 탓인지 기름이 좀 많았습니다.
굳이 평하자면 "싼 맛에 먹는다" 정도가 되겠네요.
맛으로만 따지자면 비싼 한우고기가 더 맛있었습니다.
돼지고기 가격으로 쇠고기를 먹는다는 것 정도랄까요.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수입업자들은 왜 쇠고기를 돼지고기 가격에 파는 걸까요?

여기에 아버지께선 "원가가 싸기 때문이다"고 하셨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화폐가치가 실물경제를 떠난 이후로
가격결정 요인은 원가가 아닌, "소비자들이 얼마를 낼 수 있는가" 이니까요.
미국산 쇠고기가 그만한 가격으로 팔리는데에는
소비자들이 그만한 가격이 아니면 사지 않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만일, 소비자 심리가 미국산 쇠고기의 효용을 더 높게 판단하게 된다면
가격은 반드시 올라갑니다.

이렇게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께서는 수입업자들의 경쟁을 통해 낮은 가격이 유지될꺼라도 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불경스런 아들은 동의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쇠고기 수입업의 진입장벽을 생각해봅시다.
공급할 회사랑 계약도 터야하고
국내 유통망도 갖추어야하고
물류창고도 갖추어야합니다.
석유같은 굴뚝 산업에 비할만큼은 아니지만
보따리상처럼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님에는 분명합니다.
이런 시장에서는 언제든 카르텔이 일어납니다.
명시적인게 아니라면 암묵적인 것이라도 있게 마련이죠.
업자들은 경쟁을 통해 가격을 낮추는 노력보다는 담합을 통해
이익을 보전하는 선택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 쪽이 싸게 먹히니까요.
담합에 가담하지 않을 경우 담합한 업체들에 여러 마케팅 정책에 의해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죠.
바나나를 봅시다.
돌과 델몬트는 종종 헐값으로 바나나를 출시합니다.
그리고 소규모 경쟁업체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면
슬그머니 다시 가격을 올립니다.
지금 우리는 바나나를 헐값으로 사먹지만
예전만해도 바나나는 고급과일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꺼란 예측은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 죄많은 미국산 쇠고기마저 이렇게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을꺼란 생각입니다.
시장 진입을 위한 대박 할인판매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이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추가협상과 마찬가지로
이 할인판매 기간마저도 시민들의 촛불집회의 성과가 아닐까 생각하다가
좀 서글퍼졌습니다.

배를 채우려고 머리가 복잡해지는 악영향을 생각하니
그냥 안먹는게 낫겠습니다.

ps) 그나저나 아기 이야기를 제외하고 이 얼마만에 제 이야기 포스팅입니까?


Posted by 망고

09 17, 2008 19:31 09 17, 200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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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A]Penguin 2008年 09月 18日 01時 14分 # M/D Reply Permalink

    후… … 저도 미국산 쇠고기가 무조건 먹으면 죽는 독약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수입재개 결정이 난 뒤에 네브라스카 도축장에서 문제가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도 없었고, 국민들의 여론 수렴도 부족했으며(라기보다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었던 듯;;) 수입 정당화에 대한 근거도 부족하고 주장도 엉터리니까 답답해서 그렇죠. 형 말대로 절차의 문제가 엄청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안그래도 안정성도 의심되는 수입품목을 일단 들여오고 보자는 그 태도… 한국정부가 한국정부라기보다 미국 쇠고기 수입업단체처럼 느껴지네요 쩝쩝

  2. terminee 2008年 09月 18日 10時 07分 # M/D Reply Permalink

    어디서든 알게 모르게 먹게 될 미국 쇠고기인데
    형 말대로 기분은 찝찝할 수 밖에 없네요.
    그냥 생각 없이 살면 마음은 편할 것 같은데
    그러자니 까칠한 성격이 용납하지 않고...
    에잇. 더 생각 안 할랍니다. -_-;;

  3. 주연 2008年 09月 18日 19時 53分 # M/D Reply Permalink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소고기 파시는 분의 얘기를 읽었는데
    미국산소고기 엄청 많이 나갔는데(도매)
    막상 백화점이나 음식점들은 다 호주산만 판다고 하는데
    그게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들여 온 절차도 맘에 안들고
    관리 안되는 것도 맘에 안들고...
    흠흠..

    1. 망고 2008年 09月 21日 23時 19分 # M/D Permalink

      관리의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아요.
      안되는걸 하겠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억지스럽고
      그 우기는걸 믿는 사람들은 웃기고 슬픈거죠.
      그 와중에 단속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안타까운거고...

      누가 그랬는데...
      누가 때리는지 뭐에 얻어맞는지도 모르면서 얻어맞는다고...

  4. 밤길 2008年 09月 21日 23時 09分 # M/D Reply Permalink

    소속이 소속인지라 먹을 기회가 종종 있다는-_-;

    애국자나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단백질의 국적 같은 건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인데도

    ...먹고 나니 기분이 꾸리꾸리합니다.

    사실 탄수화물이든 지방이든 먹거리엔 별 신경을 쓰지 않아서
    미제든 트랜스팻이든 GMO든 먹고나서 생각하는 타입인데
    채식까진 아니어도 이런 식생활, 조만간에 개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금내니 식약청이 알아서 식품을 잘 관리해주겠지,
    하고 살았는데 이젠 그런 기대 그만 해야겠습니다.

    뭐, 자기 밥상은 스스로 관리해야하는 시대인것 같습니다.

    1. 망고 2008年 09月 21日 23時 21分 # M/D Permalink

      제발 쇠고기에게까지 놀림받으며 식사하고 싶지 않다.

  5. .淳.<..> 2008年 09月 23日 13時 21分 # M/D Reply Permalink

    나도 모르는사이에 이미 많이 먹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다 보니 어디가서 뭐를 먹어도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고..

    그나저나 정말 간만에 성현이 외의 이야기를 하는듯?이라고 해봐야.. 그렇게 오랫만은 아닌거 같은데. ^^

  6. yool 2008年 09月 25日 13時 24分 # M/D Reply Permalink

    자기의 엄격한 입맛에는
    고기하면 한우 채끝살이지^^

    맛은 있는데... 비싸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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