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OST를 보자.
Prince, Pink, The Brand New Heavies, The Beach Boys 우와, 한자리에 모을 수 없는 사람들을 다 섞어놓았다. 장르로 따지자면 Old Pop, Comtemporary Pop, Hip Hop, Acid Jazz, Rock... 그네들의 음악적 토양을 모조리 섞어놓았다고 봐도 무방한 장르의 비빕밥이다. 이렇게 다양한 음악적 토양을 버무려서 그곳에서 뮤지컬 음악이라는 꽃을 피워내는 그들의 역량이 놀랍다.
3D 그래픽을 보자.
일반적으로 과거의 3D애니메이션들이 실물을 왜곡시켜 만화성을 강조했다면 이 애니메이션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실사에 가깝다. 펭귄의 털이며 발이며 행동 하나하나가 실사와 구분이 힘들 정도다. 모델링의 디테일에 더해서 애니메이션 연출도 나무랄데 없다. 이 정도면 진짜 펭귄도 집단으로 탭댄스를 춘다고 어린이들은 믿어버릴 것 같은데, 아무곳에도 이건 실제 펭귄이 아니라는 경고문은 나오지 않았다.
캐릭터는 어떤가.
개인적으로 이 애니메이션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다른 펭귄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웃사이더가 되는 아들 멈블과 그런 아들을 전통적인 집단에 적응시키려는 엄한 아버지. 그리고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통에 반기를 들 수 있는 강한 어머니. 무리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교황과 주교들. 새로운 것에 끌리는 젊은 아가씨 글로리아. 작지만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라몬. 그리고 어수선하고 정신없는 그의 친구들. 또 다른 카리스마 사이비 교주 러블리스. 성우들의 연기가 캐릭터에 스며들어있는 일체감. 우리 애니에서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쉬운 대목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볼거리와 줄거리의 불균형이다.
볼거리는 어른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충분함에도, 줄거리는 어른에게 즐거움을 주긴 힘든 부분이다. 쉽게 말해서, 고급스런 볼거리의 어린이 영화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인간이 대량으로 잡아들이고 있는 생선들을 돌려받기 위해 펭귄들이 춤이라도 춰야한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니 No Way. 만화나 보시라. 이건가?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동식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자신을 위한 행동이란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긴 힘든 명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파괴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인 나로서도 납득하기 힘들다.
그래서 춤을 추라고?
예술이 선한 본성을 일깨워서 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해 줄 것이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좋은 말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No War를 부르짖고 Imagine을 노래 불렀던 존 레논은 전쟁을 멈추지 못했다. 정치는 도덕의 경지에 이르러야한다고 했던 야나기 무네요시도 일본은 조선에 대한 침략을 그만두게 할 수 없었다.
예술에 혁명성이 내재되어있는가 하는 답하기 힘든 문제라고 하더라도 예술을 혁명에 이용하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명백하다. 무엇보다 춤추고 노래하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르칠만한게 전혀 아니다.
Posted by 망고

